공연 셋리스트 짜는 법 - 첫 곡부터 앙코르까지 무대 흐름 설계 가이드

곡을 잘 치는 것과 공연이 좋은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첫 곡과 마지막 곡 정하기, 에너지 곡선 설계, 키·템포 배치, 곡 사이 30초 전환까지 — 연습한 곡들을 하나의 무대로 엮는 셋리스트 설계법을 정리했습니다.

합주 관리발행 2026-06-119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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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서 환호하는 관객들
사진: Nicholas Green / Unsplash

한눈에 보기

  • 셋리스트는 곡 목록이 아니라 관객의 30분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첫 곡과 마지막 곡부터 정하고 가운데를 채우세요.
  • 전곡을 세게 치면 전부 약하게 들립니다. 3~4곡마다 한 번씩 숨 고르는 곡을 배치해 에너지 곡선을 만드세요.
  • 같은 키·비슷한 템포의 곡을 연달아 두지 말고, 곡 사이 전환(튜닝·패치·멘트) 30초까지 시간에 포함해 계산하세요.
  • 전체 길이는 주어진 시간보다 5분 짧게 잡는 것이 안전합니다. 리허설은 반드시 셋리스트 순서 그대로 돌려보세요.

셋리스트는 곡 목록이 아니라 흐름 설계다

공연을 준비하는 밴드는 대부분 곡 연습에 시간을 다 씁니다. 당연히 중요한 일이지만, 정작 무대 전체를 좌우하는 결정 하나가 마지막까지 미뤄지곤 합니다. 바로 곡을 어떤 순서로 칠 것인가입니다. 공연 일주일 전 단톡방에서 "순서는 대충 이렇게 갈까요?" 한 줄로 정해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죠.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 공연은 곡 단위가 아니라 30분짜리 하나의 경험입니다. 똑같은 다섯 곡이라도 순서에 따라 '계속 비슷한 곡이 이어지네'가 되기도 하고, '순식간에 끝났다'가 되기도 합니다. 곡 하나하나의 완성도가 공연의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곡과 곡을 잇는 흐름이 만듭니다.

이 글은 공연 준비 체크리스트에서 한 줄로만 언급했던 '셋리스트 확정'을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곡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전제에서, 그 곡들을 어떤 순서로 배치하고 곡 사이를 어떻게 설계할지를 단계별로 정리합니다.

첫 곡과 마지막 곡부터 정한다

셋리스트를 짤 때 1번 곡부터 순서대로 채우면 보통 막힙니다. 권장하는 순서는 반대입니다. 양 끝을 먼저 박고, 가운데를 나중에 채우는 것입니다.

첫 곡의 조건은 명확합니다. 멤버 전원이 긴장한 상태에서도 틀리지 않는 곡. 공연의 첫 1분은 손이 굳어 있고 모니터 사운드도 낯섭니다. 여기서 기교적인 곡을 꺼내면 사고 확률이 가장 높은 순간에 가장 어려운 일을 하는 셈이죠. 템포가 명확하고, 인트로에서 드럼이 카운트를 확실히 잡아주고, 보컬 음역이 부담스럽지 않은 곡이 첫 곡감입니다.

마지막 곡은 밴드가 가장 자신 있는 곡, 그리고 끝났을 때 박수가 터지는 곡입니다. 관객의 기억은 마지막 인상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가장 잘하는 곡을 아껴서 맨 뒤에 두는 게 정석입니다. 앙코르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앙코르용 한 곡은 셋리스트 바깥에 따로 준비해 두세요. 본 무대 마지막 곡과 앙코르 곡이 둘 다 '제일 센 곡'일 필요는 없습니다. 앙코르는 오히려 관객과 함께 즐기는 쉬운 곡이 잘 어울립니다.

에너지 곡선 — 전부 세게 치면 전부 약해진다

초보 밴드 셋리스트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잘하는 순서'나 '신나는 순서'로 곡을 쭉 늘어놓는 것입니다. 빠르고 강한 곡만 연달아 부으면 관객은 3곡째부터 무뎌집니다. 자극이 계속되면 자극이 아니게 되거든요. 볼륨 밸런스에서 모두가 크면 아무도 안 들리는 것과 똑같은 원리가 공연 단위에서도 작동합니다.

그래서 공연에는 에너지 곡선이 필요합니다. 시작은 안정적으로, 중반에 한 번 끌어올리고, 잠시 숨을 골랐다가, 마지막에 최고점을 찍는 흐름이 기본형입니다. 30분에 6곡을 치는 공연이라면 '안정적인 오프닝 → 업템포 2곡 → 미디엄이나 발라드로 한 박자 쉬기 → 다시 올려서 → 가장 센 곡으로 마무리' 같은 구조가 됩니다.

숨 고르는 곡을 '버리는 곡'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조용한 곡에서 관객은 보컬의 목소리와 가사에 처음으로 집중하고, 그 직후의 큰 곡이 두 배로 커집니다. 셋리스트에서 발라드 한 곡의 역할은 그 곡 자체가 아니라 앞뒤 곡을 빛나게 하는 대비입니다.

공연에서 손을 들어 호응하는 관객들
에너지 곡선의 목표는 마지막 곡에서 최고점을 찍는 것입니다. · 사진: Tijs van Leur / Unsplash

키·템포·분위기가 겹치지 않게 배치한다

에너지 곡선을 그렸다면 이제 디테일을 점검할 차례입니다. 의외로 많이 놓치는 것이 연속한 곡의 키와 템포입니다. 같은 키의 곡을 연달아 배치하면 관객은 이유를 설명하진 못해도 '아까 그 곡 같다'고 느낍니다. 비슷한 BPM이 세 곡 이어져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리 방법은 간단합니다. 곡 제목 옆에 키와 BPM을 적은 표를 만들어 보세요. 곡의 키를 모르겠다면 키 파인더로 확인할 수 있고, BPM은 BPM 계산기에 박자를 맞춰 두드리면 바로 나옵니다. 표로 늘어놓고 보면 'E키 곡이 세 곡 연속이네', '110~120 BPM에 곡이 몰려 있네' 같은 패턴이 눈에 들어옵니다.

분위기 겹침도 함께 봅니다. 같은 원곡 아티스트의 곡, 비슷한 리듬 패턴의 곡, 기타 톤이 동일한 곡이 연달아 오면 한 곡처럼 뭉개집니다. 커버곡 위주의 공연이라면 편곡 단계에서 합의한 송폼을 옆에 두고, 인트로가 비슷한 곡이 이웃하지 않도록 떨어뜨려 주세요.

곡 사이 30초를 설계한다 — 튜닝·패치·멘트

셋리스트를 곡 순서까지만 정하고 무대에 오르면, 곡 사이의 시간은 전부 어색한 침묵이 됩니다. 기타리스트는 튜닝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고, 보컬은 할 말이 없어서 "다음 곡은..."만 반복하고, 관객의 집중은 그 사이에 빠져나갑니다. 곡 사이 전환도 공연의 일부로 설계해야 합니다.

전환 설계의 기본은 무엇이 일어나는지 곡 사이마다 적어두는 것입니다. 어느 타이밍에 기타를 바꾸는지, 카포를 끼우는지, 이펙터 패치를 바꾸는지, 신디 음색을 넘기는지. 튜닝이 필요한 타이밍이라면 그 사이를 보컬 멘트로 덮습니다. 멘트 담당과 대략의 내용(팀 소개, 다음 곡 소개, 관객 호응 유도)까지 셋리스트에 메모해 두면 침묵이 사라집니다.

튜닝 시간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곡 사이에 모든 줄을 다시 맞추는 게 아니라 틀어진 줄만 빠르게 점검하는 것입니다. 자세한 튜닝 루틴은 합주 전 튜닝 가이드에서 다루지만, 무대에서는 페달 튜너나 클립 튜너로 15초 안에 끝내는 연습을 미리 해두는 게 좋습니다.

전체 시간은 주어진 시간보다 5분 짧게

공연장이나 기획 공연에서 받는 시간은 보통 25~40분 단위입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초보 밴드가 이 시간을 꽉 채워서 짭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어진 시간보다 5분 짧게 짜는 것이 정답에 가깝습니다.

무대 위의 시간은 계산보다 길게 흐릅니다. 곡 길이 합계가 28분이어도 곡 사이 전환이 6번이면 3~5분이 더 붙고, 멘트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장비 트러블이 한 번이라도 나면 금세 시간을 넘깁니다. 여러 팀이 서는 조인트 공연에서 시간을 넘기는 팀은 다음 팀의 시간을 깎아 먹는 팀으로 기억됩니다.

계산법은 단순합니다. 각 곡의 실제 연주 길이(편곡 후 기준)를 더하고, 곡 사이 전환 횟수 × 40초를 더한 값이 주어진 시간에서 5분을 뺀 값 이하면 됩니다. 시간이 남으면 앙코르나 여유 있는 멘트로 채우면 그만이지만, 넘치는 시간은 무대 위에서 줄일 방법이 없습니다.

셋리스트 종이 만들기와 공유

순서가 확정되면 멤버 전원이 같은 정보를 보게 만들어야 합니다. 무대용 셋리스트 종이에는 곡 제목만 크게 적는 게 아니라, 멤버별로 필요한 정보를 함께 적습니다. 곡명 / 키 / BPM / 시작 신호(누가 카운트하는지) / 전환 메모(기타 교체, 카포 2프렛, 패치 3번) 정도면 충분합니다.

글씨는 무대 바닥에 두고 일어선 채로 읽을 수 있을 만큼 커야 합니다. A4 한 장에 곡 6~8개, 굵은 펜이나 큰 폰트로 출력해서 멤버 수만큼 준비하세요. 모니터 스피커 위나 이펙터 보드 옆처럼 각자 시선이 닿는 곳에 테이프로 고정하면 조명이 어두워도 잃어버릴 일이 없습니다.

공연 전 연습 단계에서는 단톡방에 이미지로 공유하는 것보다, 합주 일정과 함께 셋리스트를 한 곳에서 관리하는 편이 버전 꼬임을 막아줍니다. '최종', '진짜최종' 파일이 난무하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옛날 버전을 보고 연습해 옵니다. 순서를 바꿨다면 바꾼 즉시, 바뀐 이유와 함께 전원에게 알리는 것이 원칙입니다.

악보와 메모가 적힌 종이
무대용 셋리스트에는 곡명과 함께 키, BPM, 전환 메모까지 적습니다. · 사진: Marius Masalar / Unsplash

리허설은 셋리스트 순서 그대로

셋리스트의 마지막 점검은 리허설입니다. 핵심은 하나, 공연에서 칠 순서 그대로, 곡 사이 전환까지 포함해서 통으로 돌려보는 것입니다. 곡 단위로는 완벽해도 순서대로 붙여보면 문제가 드러납니다. 발라드 직후의 빠른 곡에서 드러머의 손이 안 풀린다거나, 기타 교체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거나, 연속 고음 곡에서 보컬 목이 버티지 못한다거나.

통 리허설은 한 번이라도 녹음해 두세요. 합주 녹음에서 다뤘듯 스마트폰 한 대면 충분합니다. 들어보면 곡 사이 침묵이 몇 초나 되는지, 에너지 곡선이 의도대로 흐르는지가 객관적으로 들립니다. 여기서 발견한 문제로 순서를 한 번 더 조정하는 것까지가 셋리스트 작업의 끝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면 — 셋리스트는 공연 며칠 전에 바꾸지 않는 게 좋습니다. 순서를 바꾸면 전환 설계가 전부 어그러지고, 몸에 익힌 흐름이 무대에서 헷갈립니다. 통 리허설을 마친 시점의 셋리스트가 최종본입니다. 그 다음은 믿고 무대에 오르는 일만 남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곡이 6곡밖에 없는데도 에너지 곡선이 필요한가요?

A. 필요합니다. 오히려 곡 수가 적을수록 한 곡 한 곡의 배치 영향이 큽니다. 6곡이라면 '안정적인 첫 곡 → 업템포 → 업템포 → 느린 곡으로 숨 고르기 → 다시 올리기 → 가장 자신 있는 곡' 구조만 지켜도 공연의 인상이 크게 달라집니다.

Q. 느린 곡이 한 곡도 없으면 어떻게 하나요?

A. 꼭 발라드일 필요는 없습니다. 템포를 유지하더라도 다이내믹이 작은 곡, 악기 수가 적게 시작하는 곡, 보컬 중심의 곡이면 숨 고르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전부 강한 곡뿐이라면 한 곡의 인트로를 어쿠스틱하게 편곡해서 대비를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Q. 앙코르 곡은 꼭 준비해야 하나요?

A. 공연 성격에 따라 다릅니다. 여러 팀이 서는 조인트 공연이나 시간이 빠듯한 무대라면 앙코르가 없는 게 보통입니다. 단독 공연이거나 지인 관객이 많은 공연이라면 한 곡 정도 준비해 두세요. 준비 없이 앙코르 요청을 받으면 이미 친 곡을 다시 치게 되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미리 정해둔 쪽이 훨씬 깔끔하게 끝납니다.

Q. 셋리스트는 언제까지 확정해야 하나요?

A. 공연 2주 전을 권합니다. 마지막 2주는 확정된 순서로 통 리허설을 돌리는 기간입니다. 순서를 바꾸면 곡 사이 전환 설계(튜닝, 장비 교체, 멘트)가 전부 다시 짜이기 때문에, 통 리허설 이후에는 곡 교체보다는 멘트나 전환을 다듬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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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대학 내 댄스동아리, 직장인 뮤지컬 동호회, 아마추어 밴드 등에서 공연과 합주를 운영해 온 멤버들이 모여 편집합니다. 파트별 연습법, 합주 진행, 팀 관리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정리하며, 카카오톡 단체방과 엑셀로 흩어진 음악 모임 관리 노하우를 한곳에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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